이순신 장군님

좀전에 천군을 보면서 이순신 장군님이 생각 났습니다

한국의 장군이라고 하면 가장먼저 생각 나는 이순신장군님..

이순신 장군님의 프로필(??)을 보면..

프로필

조선시대의 임진왜란 때 일본군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운 명장.

본관 덕수
별칭 자 여해. 시호 충무
활동분야 군사
출생지 서울 건천동
주요저서 《이충무공전서》

1545∼1598


본관은 덕수(德水)이고, 자는 여해(汝諧),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서울 건천동(乾川洞)에서 태어났다. 1572년(선조 5) 무인 선발시험인 훈련원 별과에 응시하였으나 달리던 말에서 떨어져 왼쪽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으로 실격되었였다. 32세가 되어서 식년 무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권지훈련원봉사(權知訓練院奉事)로 첫 관직에 올랐다. 이어 함경도의 동구비보권관(董仇非堡權管)과 발포수군만호(鉢浦水軍萬戶)를 거쳐 1583년(선조 16) 건원보권관(乾原堡權管)·훈련원참군(訓鍊院參軍)을 지냈다.

1586년(선조 19) 사복시 주부를 거쳐 조산보만호(造山堡萬戶)가 되었다. 이때 호인(胡人)의 침입을 막지 못하여 백의종군하게 되었다. 그 뒤 전라도 관찰사 이광에게 발탁되어 전라도의 조방장(助防將)이 되었다. 이후 1589년(선조 22) 선전관과 정읍(井邑) 현감 등을 거쳐 1591년(선조 24) 유성룡의 천거로 절충장군·진도군수 등을 지냈다. 같은 해 전라좌도수군절도사(全羅左道水軍節度使)로 승진한 뒤, 좌수영에 부임하여 군비 확충에 힘썼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포에서 일본 수군과 첫 해전을 벌여 30여 척을 격파하였다(옥포대첩). 이어 사천에서는 거북선을 처음 사용하여 적선 13척을 분쇄하였다(사천포해전). 또 당포해전과 1차 당항포해전에서 각각 적선 20척과 26척을 격파하는 등 전공을 세워 자헌대부로 품계가 올라갔다. 같은해 7월 한산도대첩에서는 적선 70척을 대파하는 공을 세워 정헌대부에 올랐다. 또 안골포에서 가토 요시아키[加珙嘉明]의 수군을 격파하고(안골포해전), 9월 일본 수군의 근거지인 부산으로 진격하여 적선 100여 척을 무찔렀다(부산포해전).

1593년(선조 26) 다시 부산과 웅천(熊川)에 있던 일본군을 격파함으로써 남해안 일대의 일본 수군을 완전히 일소한 뒤 한산도로 진영을 옮겨 최초의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다. 이듬해 명나라 수군이 합세하자 진영을 죽도(竹島)로 옮긴 뒤, 장문포해전에서 육군과 합동작전으로 일본군을 격파함으로써 적의 후방을 교란하여 서해안으로 진출하려는 전략에 큰 타격을 가하였다. 명나라와 일본 사이에 화의가 시작되어 전쟁이 소강상태로 접어들었을 때에는 병사들의 훈련을 강화하고 군비를 확충하는 한편, 피난민들의 민생을 돌보고 산업을 장려하는 데 힘썼다.

1597년(선조 30) 일본은 이중간첩으로 하여금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바다를 건너올 것이니 수군을 시켜 생포하도록 하라는 거짓 정보를 흘리는 계략을 꾸몄다. 이를 사실로 믿은 조정의 명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본의 계략임을 간파하여 출동하지 않았다. 가토 기요마사는 이미 여러 날 전에 조선에 상륙해 있었다. 이로 인하여 적장을 놓아주었다는 모함을 받아 파직당하고 서울로 압송되어 투옥되었다. 사형에 처해질 위기에까지 몰렸으나 우의정 정탁의 변호로 죽음을 면하고 도원수 권율의 밑에서 두 번째 백의종군을 했다.

그의 후임 원균은 7월 칠천해전에서 일본군에 참패하고 전사하였다. 이에 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된 그는 12척의 함선과 빈약한 병력을 거느리고 명량에서 133척의 적군과 대결, 31척을 격파하는 대승을 거두었다(명량대첩). 이 승리로 조선은 다시 해상권을 회복하였다. 1598년(선조 31) 2월 고금도(古今島)로 진영을 옮긴 뒤, 11월에 명나라 제독 진린과 연합하여 철수하기 위해 노량에 집결한 일본군과 혼전을 벌이다가 유탄에 맞아 전사하였다(노량해전).

무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시문(詩文)에도 능하여 《난중일기》와 시조·한시 등 여러 편의 뛰어난 작품을 남겼다. 1604년(선조 37) 선무공신 1등이 되고 덕풍부원군(德豊府院君)에 추봉된 데 이어 좌의정이 추증되었다. 1613년(광해군 5) 영의정이 더해졌다. 묘소는 아산시 어라산(於羅山)에 있으며, 왕이 직접 지은 비문과 충신문(忠臣門)이 건립되었다. 통영 충렬사(사적 제236호), 여수 충민사(사적 제381호), 아산 현충사(사적 제155호) 등에 배향되었다.

유품 가운데 《난중일기》가 포함된 《이충무공난중일기부서간첩임진장초》는 국보 제76호로, 장검 등이 포함된 이충무공유물은 보물 제326호로, 명나라 신종이 무공을 기려 하사한 충무충렬사팔사품(통영충렬사팔사품)은 보물 제440호로 지정되었다. 이밖에도 그와 관련하여 많은 유적이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의 삶은 후세의 귀감으로 남아 오늘날에도 문학·영화 등의 예술작품의 소재가 되고 있다.


이정도로 긴 프로필을 가지신 이순신 장군님..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이 이순신 장군님을 기린 충무공 탄신일- 4월28일 이 있다
충무공 탄신일

충무공 이순신은 1545년(인종 1년) 4월 28일 서울 건천동(지금의 인현동)에서 부친 이정(貞)의 4형제 가운데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정부는 충무공의 애국 위훈을 길이 전승하고 민족자주정신을 선양하기 위해 1967년에 4월28일을 '이충무공 탄신기념일'로 고시하였다


그리고 우리나라 해군은 이순신장군님의 이름으로 구축함을 만들고..
한국 해영에서 열심히 돌고 있을거라 본다..(군대사정은 모르니까..)
이 이순신 함은 그 이순신님이 아니라 다른 이순신님이랍니다..
뭐 이름은 같으니...(탕)




상세정보

2002년 5월에 진수된 한국 최초의 4,000톤급 구축함.

분류 구축함
제작국가 한국
제작연도 2002년 5월
사용국가 한국
제원 길이 149.5m, 너비 17.4m, 높이 9.5m, 톤수 4,200t, 가스터빈 2대, 디젤엔진 2대, 항속거리 4,000해리

한국형 구축함 사업인 KDX-Ⅱ(Korea Destroyer Experiment-Ⅱ) 사업의 첫 번째 구축함이자, 한국 최초의 4,000t급 구축함이다. 대우조선해양(주)이 2002년 5월 22일 순수 국내 기술로 진수하였다.

길이는 149.5m, 너비는 17.4m, 높이는 9.5m, 톤수는 4,200t, 최대속도는 30노트, 항속거리는 4,000해리(18노트)이다. 추진기관은 가스터빈 2대와 디젤엔진 2대를 갖추었고, 320여 명이 승선할 수 있다.

무장은 함대함 유도탄인 하푼미사일, 중거리 함대공 유도탄 SM-Ⅱ, 대(對)유도탄 방어유도탄 램(RAM), MK-41 수직발사 시스템, 근접방어무기체계(CIWS) 골키퍼, 5인치 함포 1문, 슈퍼 링스 대잠헬리콥터 2대 등이다. 대함·대공·대잠 작전 등 입체적인 현대전 수행 능력과 중거리 대공 방어 능력을 지닌 구축함으로, 한국 해군의 원해(遠海) 작전 능력을 높인 구축함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함대공 유도탄은 사정거리가 185㎞에 달해 중장거리에서 가해 오는 적의 항공 위협으로부터 구축함 자체는 물론, 함대까지도 방호할 수 있다. 그 밖에 지휘통제 및 사격통제 장비, 무장 및 탐지장비 등 모든 자료를 상호 공유해 작전상황에 따라 신속하게 조치할 수 있는 실시간 자동화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진수 후 1년간 운용 시험을 거친 뒤, 2003년 12월 해군에 실전 배치되었다. 2005년 6월에는 영국 포츠머스항(港)에서 열린 트라팔가르해전 승전 및 넬슨 제독 순국 200주년 기념 국제관함식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본인이 원하는건

항모에 붙혀달라는 거다!

니미츠쯤 되는것에 충무공 이순신 항공모함 이라고 붙히면 정말 그 포스가..

여하튼 천군을 보면서 다시한번 이순신 장군님을 인터넷에서 찾아봤습니다.

by lamane | 2006/07/17 18:40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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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얼큰이 at 2006/07/17 18:45
천군이라면.... 방금전에 OCN에서 한 걸 보신 모양이네요.^^
Commented by 시즈하 at 2006/07/17 19:00
이 이순신 함은 충무공님의 이순신함이 아닌걸로 압니다만;;
문무공 이순신의 이름을 붙였다고 들었는데...
Commented by VioletFear at 2006/07/17 19:47
ㅡㅡ;; DDG 975번은 충무공 이순신 함입니다.

원래 건조초기 현대중공업이 문무대왕 으로 이름을 정할려고 했지만, 해군이 대양함대로 나설 가장 첫 구축함이기에 가장 좋은 이름을 붙여야겠다 싶어서 충무공 이순신 으로 정했습니다. 이순신 인데 우리가 잘 아는 이순신이 아닌 배는 잠수함 이순신 함입니다. 잠수함 이순신함에 붙은 이름의 주인이 무의공 이순신 입니다.

무의공 이순신은 충무공 이순신 휘하의 종장중의 하나로, 후에 원균의 종장이 되었다가, 다시 이순신이 복직하자 충무공 이순신의 종장이 되었습니다.

즉, 구축함 이순신의 이순신은 충무공 이순신이고.
잠수함 이순신의 이순신은 무의공 이순신이죠.

애시당초.. 문무공 이순신은 존재하지도 않죠...
Commented by 시즈하 at 2006/07/17 21:14
그렇군요... 이런 제가 엄청난 착각을...-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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